`70년대 디자인 맞습니다` 마르첼로 간디니의 작품세계
  • 이동익
  • 승인 2015.11.27 00:00

``우와! 이게 정말 70년대에 만들어졌다고요?``



맞다. 위 사진의 자동차는 1970년에 제작된 `란치아 스트라토스(Lancia Stratos)`의 콘셉트카로, 콘셉트카명은 `란치아 스트라토스 제로(Lancia Stratos Zero)`다. 심플하면서도 뚜렷한 각과 쐐기 디자인이 특징으로, 디자인을 담당한 디자이너의 작품 세계를 잘 투영한 자동차다. 특히 앞유리를 열어 운전자가 타고 내릴 수 있게 한 디자인은 2015년인 지금 봐도 파격적이기 짝이 없다. 조금 더 과거로 가보자.



이번에는 60년대 제작된 자동차의 사진이다. 1969년 피아트의 또 다른 브랜드였던 `아우토비앙키(Autobianchi)`에서 내놓은 콘셉트카 `런어바웃(Runabout)`이다. 모터 보트의 선체를 모티브로 한 쐐기 형태의 차체 디자인과 운전석 뒤쪽 롤바 양측에 장착된 헤드램프의 디자인은 지금으로서도 혁신적이다. 이후 1972년, 피아트는 런어바웃의 차체 디자인 개념을 바탕으로 경량 스포츠카인 `피아트 X1/9`를 개발한다.


이 두 콘셉트카의 디자인을 맡은 자동차 디자이너의 이름은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다. 그의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각`과 `쐐기(윗부분이 넓고 밑 부분이 점차 좁아지는 모양)` 형태다.



`람보르기니 미우라`를 비롯해 `쿤타치`, `디아블로` 등 수많은 역작을 디자인한 그는 각과 쐐기 형태의 조합으로 완성된 독특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다.


혹자는 그를 `각과 쐐기만을 남발한 자가복제가 심각한 디자이너` 취급하기도 한다. 힘있는 직선미를 가진 자동차가 그의 대표작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 그가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의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국내 도로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정통적인 3박스 구조의 세단, BMW 5시리즈의 1세대 디자인을 맡은 것도 그고, 우아하고도 아름다운 곡선으로 전세계 자동차 마니아를 사로잡은 미우라의 디자인을 맡은 것도 그다. 마르첼로 간디니는 이처럼 보편적인 디자인뿐만 아니라 유려한 곡선으로도 차체를 디자인하기도 하는 디자이너다.


마르첼로 간디니가의 인생과 그가 디자인한 대표적인 자동차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자.


마르첼로 간디니, 그의 족적



마르첼로 간디니는 이탈리아 토리노 출생으로,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학업을 마치고 `카로체리아(Carrozzeria, 디자인과 생산 능력을 갖춘 소규모 자동차 공방) 기아(Ghia)`에서 자동차의 외관과 실내 디자인 담당으로 근무했다.


본격적인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1965년 `카로체리아 베르토네(Bertone, 이하 베르토네)`에 치프 디자이너로 입사하면서부터다. 베르토네는 오랜 전통을 가진 자동차 디자인 공방으로, `프랑코 스칼리오네(Franco Scaglione)`와 `조르제토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와 같은 거장을 배출한 곳이다. 마르첼로 간디니는 이후 1980년까지 15년간 베르토네에 근무하면서 자신만의 색을 담은 전위적이면서도 직관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람보르기니 미우라(Lamborghini Miura, 1966~1972)


1966년 제네바 모터쇼. 관객들의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을 한 몸에 받는 프로토타입 모델이 있었다. 이 모델의 이름은 `P400`으로, 훗날 `람보르기니 미우라`라는 이름으로 알려질 슈퍼카의 초기형 모델이었다.



모터쇼 관객들은 P400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제껏 보지 못한 아름다우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의 영향이 컸다. 언론에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우라는 제네바 모터쇼의 스타가 되었고, 미우라를 디자인한 마르첼로 간디니 역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개발 초기, 당시 신생업체였던 람보르기니가 슈퍼카를 제작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슈퍼카에 V12 미드십 엔진을 얹는 것은 자사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인 간디니에게도 크나큰 부담이었다. 전문가들도 성공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하지만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매력적인 곡선의 차체, 원형의 팝-업식 헤드램프, 리어펜더 앞에 위치한 공기 흡입구 등 아름답고도 개성있는 디자인 요소로 완성된 미우라는 슈퍼카의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다.



제네바 모터쇼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P400은 미우라라는 이름으로 이듬해 곧바로 제작에 들어갔다. 4.0리터 V12 엔진은 350마력(bhp)의 최고출력을 발휘했으며, 280km/h의 최고속도를 냈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는 6.7초가 소요됐다. 미우라라는 이름은 창업자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 1916~1993)가 직접 붙인 것으로, 투우(싸움소) 중 최고 종자의 이름을 따왔다.


람보르기니 에스파다(Lamborghini Espada, 1968~1978)



람보르기니 에스파다는 이전 모델인 `이슬레로`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람보르기니가 만든 가장 실용적인 2도어 GT(Gran Turismo)다.



람보르기니의 콘셉트카인 `마잘(Marzal)`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1967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 공개됐다. 외형은 각진 디자인으로 디자인되었으며, 인테리어는 독특한 팔각형 모양으로 배치되어 여러 게이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당초 베르토네는 걸윙도어를 제시했으나, 람보르기니 측에서 그 제안을 거절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4.0리터 V12 엔진은 325제동마력(bhp)의 힘을 낸다. 단종될 때까지 총 1,217대가 만들어져 동시대 람보르기니에서 생산한 모델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약 10년 동안 에스파다 S1(에스파다 400 GT), 에스파다 S2(에스파다 400 GTE), 에스파다 S3(에스파다 400 GTS) 등 세 종류의 파생 모델이 제작됐으나, 외관 디자인은 그대로인 채로 인테리어만 고급스러운 방향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에스파다(Espada)`는 스페인어로 검(劍)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특별히 투우사가 황소를 죽이는데 사용하는 `검`을 뜻하며, 투우사가 스스로를 검사로 지칭할 때 사용하는 스페인의 구어이기도 하다.


람보르기니 쿤타치(Lamborghini Countach, 1974~1990)



미우라가 한창 인기를 끌던 1960년대 후반, 람보르기니는 미우라의 명성을 뛰어넘을 후속 모델 개발에 착수했고,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이 엔진을 장착한 프로토타입 `LP500`을 공개한다.



LP500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목을 끌었던 미우라와 달리 사다리꼴 모양의 판으로 뒤덮여 있어 대체적으로 평평한 형태의 차체를 이룬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앞쪽으로 밀어 뒤쪽에 엔진 공간을 확보하는 디자인 콘셉트의 시초다. 과도하게 전폭의 차체와 낮은 전고 때문에 일반 도어를 적용하기 어려워 적용한 상하 개폐식 도어인 `시저스 도어(Scissors door)`는 LP500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러나 후방 시야가 형편 없던 탓에 운전자가 문틀에 앉아 뒤를 살피며 후진을 해야 했다.



LP500은 등장과 함께 월등한 성능으로 눈길을 모았다. 446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5.0리터 V12 엔진을 얹은 LP500의 최고시속은 300km/h에 달했다. 1974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첫 생산된 `쿤타치`가 인도됐다. 쿤타치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피에몬테 지역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봤을 때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감탄사에서 차용한 이름이다.



쿤타치의 프로토타입 모델인 `LP500`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의 신차 안전 검사 중 충돌 테스트에서 승인을 받기 위해 희생된 탓이다.


람보르기니 디아블로(Lamborghini Diablo, 1990~2001)


1985년, 람보르기니는 그에게 쿤타치 후속 차량의 디자인을 일임했고 마르첼로 간디니는 1986년 봄 작업을 끝마쳤다. 그러나 1987년 크라이슬러가 재정난에 빠진 람보르기니를 흡수하고 자사의 디자인 센터에 후속 차량 디자인을 넘기면서 마르첼로 간디니의 도안은 대대적인 수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람보르기니 디아블로의 디자인은 마르첼로 간디니가 맡은 것이 아니게 되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속 차량은 크라이슬러의 손을 거치면서 다른 자동차가 되어 있었다. 디자인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머리가 넓으면서 낮고 허리는 잘록해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느껴진다`는 호평과 `사람의 이목만 끄는데 그치는 디자인`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맞붙었다.


자동차의 이름은 `디아블로`라고 정해졌다. 디아블로는 1869년 7월 11일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엘 시코로`(EL Chicorro)라는 소와의 결투를 통해 유명해진, 베라쥬아(Veragua) 공작이 기르던 소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디아블로는 스페인어로 `악마`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1990년, 디아블로 1세대 모델이 출시되어 판매되기 시작했다. 출시 당시 가격은 24만 달러였다. 5.7리터, 48밸브로 거대해진 V12 엔진이 DOHC 방식으로 탑재됐고, 전자식 연료 분사 시스템(Multi-point Fuel Injection)을 갖추었다. 최고 출력은 492마력에 달하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까지는 4초 미만에 도달하고, 최고 속도는 325km/h이르는 등, 이름처럼 `악마` 같은 성능을 자랑했다.


BMW 5 시리즈(BMW 5 Series, 1972~)


1972년, BMW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1세대 `5 시리즈(모델명 `E12`)`를 출시했다. 디자인은 마르첼로 간디니가 맡았다. 1세대 5 시리즈는 1970년 제네바 모터쇼에 전시되었던 `2002ti`라는 이름의 세단 모델을 다듬은 것으로, 유럽 시장 전용 모델이었다.



BMW 5 시리즈는 정통적인 3박스 구조의 세단 형태를 유지하면서 6세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3.0리터 모델에 한해서는 여전히 직렬 6기통 레이아웃을 사용하고 있다. 5 시리즈라는 이름은 과거 파산 위기에 몰렸던 BMW를 되살린 일등공신인 초소형 승용차 `이세타`의 출시 이후 다섯 번째 새로운 모델이라는 뜻이다.


부가티 EB110(Bugatti EB110, 1991~1996)


1991년 등장한 부가티 EB110은 이탈리아 사업가인 로마노 아르티올리가 1952년 문을 닫은 부가티의 부활을 위해 부가티 아우토모빌리에서 생산한 차량이다. 아르티올리는 람보르기니 엔진 설계자 파울로 스탄지니와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와 함께 EB110을 제작에 돌입했다.



EB110은 3.5리터 V12 DOHC 엔진에 4개의 터보차저를 장착하여 550마력의 최고출력과 342km/h의 최고속도를 발휘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4초만에 도달했다. 1992년에 등장한 EB110S는 최고출력 610마력, 최고속도 351km/h로 성능이 향상되었다. 이렇듯 탁월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실용적이지 못한 실내와 무리한 투자로 인해 부가티 부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아르티올리의 회사는 1996년 파산했고, 부가티는 1998년 폭스바겐에 인수되었다.


모델명인 EB110은 1881년에 출시된 부가티 최초의 자동차 `에토레`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다.



글 이동익 기자, 사진 각 제조사 홈페이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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