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상징에서 남자 로망으로 거듭났던 `허머`
  • 윤현수
  • 승인 2017.04.28 17:47

허머는 남심을 자극하는 자동차였다. 뇌쇄적인 디자인과 대 배기량 엔진의 파워풀한 성능을 지닌 슈퍼카, 혹은 루프를 열어젖혀 운전석으로 스며드는 바람을 즐기는 컨버터블과는 색다른 매력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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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차체와 남성적인 디자인, 그리고 어떤 도로든 제 집 안방처럼 편안히 드나들며 야성미를 물씬 풍겼다. 그리고 우리네 길거리에서도 매우 드물게 볼 수 있는 허머는 다목적 군용차에 그 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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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HMMWV` (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 -고기동 다목적 차량)라 명명되었던 이 군용차는 `험비 (Humvee)`라는 애칭으로 불려왔다.


AM제너럴이 제작한 이 차량은 현란한 이름에 걸맞게 높은 수직 장애물이나 최대 76cm 깊이의 참호를 통과할 수 있는 험로 주파력을 지녔다. 이러한 뛰어난 기동성을 통해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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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을 거침없이 누비던 이 자동차는 AM제너럴의 수익 증대를 위해 일반인에게도 선보여지게 되었다. 기존 시장에 팔리던 일반적인 승용차들과는 판이한 매력과 남성적인 이미지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아왔다.


브랜드 폐지 전까지 시판용으로 제작된 허머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으며. 브랜드명의 앞 글자를 따온 H와 숫자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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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은 군용으로 쓰이던 `HMMWV`를 살짝 손봐 `허머 (Hummer)`라는 브랜드를 통해 시판용으로 내놓은 모델이다. 전장을 자유로이 누비던 그 솜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매력으로 꼽혔다. 1992년 출시된 이 자동차는 M998 험비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거대한 차체에 효율성 떨어지는 구식 디젤 엔진을 넣다 보니 연비는 나쁠 수 밖에 없었고, 지나치게 높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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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 이후에는 GM (General Motors)가 허머 브랜드를 인수하게 되면서 하위급 모델을 만들게 되었다. `H2`는 군용차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 GM이 자체적으로 개발했던 서버밴 플랫폼을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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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험로 주파력 자체는 당연히 원조보다 다소 뒤떨어진다. 그러나 군용 다목적 차량 특유의 투박함보다는 크롬을 이곳저곳 바르고 보다 승용차다운 디테일을 통해 럭셔리하면서 남성적인 고유의 매력을 발산했다. 모델에 따라 V8 6리터 가솔린 엔진과 4.4리터 엔진을 장착하고 4단 자동변속기와 풀타임 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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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머 가문의 막내로 자리한 H3는 GM의 중형 픽업 트럭인 콜로라도의 플랫폼을 사용했다. 3톤에 달하는 H2에 비해 800kg 가량 가벼운 몸무게로 상대적으로 높은 연료효율성과 낮은 가격 덕에 `부담 덜한 허머`로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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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오염 문제로 H1이 시장에서 퇴출되며 사실상 차량 두개로 라인업을 꾸려나갔다. 따라서 모기업 GM은 보다 풍성한 구성으로 위장하기 위해 여러가지 스페셜 에디션이나 변종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사치와 멋으로 가득한 이 브랜드는 오래 존속되지 못했다. 꾸준히 연식 변경 모델을 통해 개선을 이루긴 했으나, 유가 상승으로 작은 차들이 주목 받기 시작하며 거대한 차량들로만 구성된 라인업만으론 수익을 보장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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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는 `HX` 컨셉트를 등장시켜 허머의 미래를 내다보기도 했다. 허머의 기본이 되는 `험비`의 오프로더 성능을 강조했으며, 비현실적인 인테리어 디테일을 통해 보다 럭셔리하고 터프한 허머로의 변신을 꾀했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 위기로 말미암아 어느덧 파산보호 신청까지 하게 된 모기업의 상황 때문에 HX가 세상에 나오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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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조금이라도 이윤을 남기기 위해 중국의 한 중공업 업체에게 허머를 넘기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허머가 지닌 가치가 높게 매겨질 가능성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매각 건이 물거품으로 되며 허머를 존속시킬 여유가 없었던 GM은 눈물을 머금고 2010년 브랜드를 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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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으로 여겨지는 높은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배기가스 규제와 경제 위기는 허머를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짧지만 굵었던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브랜드는 단종되었으나, 무덤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허머를 손에 쥐었던 GM은 여전히 허머를 소유한 오너들을 위해 서비스와 액세서리, 매뉴얼 및 팁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저유가 시대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선 초호화 SUV가 주목 받고 있는 지금, 허머는 무덤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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