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가 아닌 가치로 바라봐야하는 곳, 인제 스피디움 클래식카 박물관
  • 김상혁
  • 승인 2018.05.28 16:03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에 자리한 ‘인제 스피디움 클래식카 박물관’은 지난 2017년 12월 개장한 자동차 박물관이다. 국내에서 생소한 클래식 카를 내건 유일한 박물관이기도 하다. 몇몇 자동차 박물관에서 클래식카 존을 운영하지만 ‘클래식카’를 메인타이틀로 내건 경우는 처음이다. 아직 국내 소비자 및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클래식카는 어렵기도 하고 생소한 문화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진취적인 박물관이다. 특히 박물관에 전시된 차들은 김주용 관장이 직접 수집한 개인 소장품으로 얼마 전까지 도로를 누볐던 현역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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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위치한 곳은 자동차 레이스가 펼쳐지는 서킷 안에 터를 잡고 있다. 다이내믹한 스피드, 터질듯한 사운드를 채우는 서킷과는 상반된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인제 스피디움 클래식카 박물관은 입구에서부터 빈티지한 분위기로 꾸려졌다. 클래식 카에 친숙함과 감성적인 공간을 연결한 것이다. 흑백필름 영화에서 봤을 법한 극장 매표소 느낌의 입구를 지나 박물관에 들어서면 동심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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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어른 할거 없이 마법 세계 판타지를 그리게 만들었던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마법학교 학생들이 열차를 타는 곳, 9와 3/4 플랫폼으로 인테리어가 꾸려졌고 그에 맞게 영국 브랜드의 소형차를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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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표적인 모델 로버 미니 두 대와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와 협력해 탄생한 ‘폴 스미스 에디션’, 모리스 마이너 1000으로 총 4대다. 특히 모리스 마이너 1000은 전 오너가 자동차 관리뿐 아니라 카탈로그, 핸드북, 등록 서류, 액세서리 등을 하나하나 모아두고 관리했을 정도로 애지중지했던 모델이라고 한다. 폴 스미스 에디션도 한정 생산돼 희소가치가 높은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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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의 마법에서 빠져나오면 영화 나쁜 녀석들과 미국 개러지에서 영감을 얻어 꾸며진 것을 볼 수 있다. 스프레이 락카로 담장이나 차고 등에 그림을 그려 넣은 그래비티가 이어져있고 그 사이로 과거 미국 주유소 모습을 재현했다. 나쁜 녀석들의 배경과 올드한 감성 공간에는 2도어 럭셔리 쿠페가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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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윙 도어로 잘 알려진 300SL의 계보를 잇는 70~80년대 메르세데스 벤츠 최상위 럭셔리 쿠페 450 SLC, BMW V12 엔진을 얹고 M1의 디자인 코드를 바탕으로 제작된 BMW 850i, 브랜드를 넘어서 미국의 풍요와 사치를 대표했던 캐딜락 엘도라도라는 좋은 녀석들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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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으로 영화 ‘러쉬, 더 라이벌’의 시대 배경인 1976 그랑프리로 꾸며진 러쉬존은 당시 푸조 모터스포츠의 팀의 상징적인 팀 컬러와 스폰서 스티커 등을 그대로 재현한 505 GTi, 이탈리아 낭만을 대표하는 알파로메오 스파이더가 전시됐다. 러쉬존에 전시된 알파로메오 스파이더는 2,500대 한정 생산된 3세대 모델로 고성능을 뜻하는 콰트리폴리오 배지가 부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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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개러지를 벗어나면 과거의 향수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듯, 광장 형태 전시 공간이 나온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등장하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앞에는 BMW 1502, 320i, M535i가 전시됐으며, 라라랜드의 리알토 극장 앞에서는 로터스 에스프리, 푸조 205 GTi, 폭스바겐 코라도가 주차되어 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며 문고리를 걸어 잠갔던 킹스맨의 펍 앞으로는 2세대 폭스바겐 골프 카브리올레, 혼다 시티 카브리올레, 알파로메오 스파이더가 매너를 지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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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1502의 경우 BMW가 경영 위기에 직면했을 때 기사회생할 수 있도록 만든 기념비적인 모델이며, 전시된 M535i는 유로 사양의 헤드램프, 특수 규격 휠 등이 더해진 잔존 대수가 많지 않은 희소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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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성이라는 가치로 본다면 폭스바겐 코라도 역시 빠질 수 없는 모델이다. 코라도가 폭스바겐 시로코 후속 모델이라는 점은 물론이고 모델명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 많다. 또한 인제 스피디움에 클래식카 박물관에 전시된 코라도는 VR6 VSR로 500대 한정 생산된 모델이다. VSR은 독일어 Variables SaugrohR(가변 흡기 매니폴드)의 약자며 폭스바겐 모터스포츠에서 설계한 고성능 엔진 장착 모델임을 증명하는 배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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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위를 둘러싼 진열장은 자동차 프라모델로 가득하다. 1930년대 모델부터 최근 출시된 자동차까지 살펴볼 수 있는데 전시된 프라모델 역시 김주용 관장이 직접 모아온 소장품이다. 눈에 띄는 점은 브랜드 혹은 모델별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라인업을 갖췄다는 것이다. 단순히 예쁜 차, 인기 있는 차만 보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가진 역사, 모델별 발전사와 스토리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대적 상황과 출시 배경 등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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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향수가 서서히 걷혀갈 때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새하얀 커튼이 쳐진 전시존이다. 커튼을 열어젖히면 놀이동산에서 한 번쯤 봤던 거울의 방이 나타난다. 거울로 사방이 둘러싸인 공간에 자리한 건 재규어 XJS와 네이비, 레드 컬러가 인상적인 다임러 더블 식스다. 특히 레드 컬러의 다임러 더블 식스는 200대 한정 생산된 모델로 특별한 사연을 담고 있다. 재규어가 포드에 인수되며 더 이상 V12 엔진을 만들지 않게 됐고 이미 만들어져 있던 V12 엔진을 얹은 것. 

V12 엔진 탑재 한정판 모델임을 나타내는 황금색 플레이트가 대시보드에 박혀있고 "This is to commemorate the last V12 engined Daimler motor cars to be manufactured by Jaguar Cars Limited."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플레이트에 가장 크게 새겨진 문자는 닉 셀례(Nick Scheele)의 사인이다. 닉 셸레는 포드가 재규어를 인수 후 재규어 사장으로 임명한 인물이다. 네이비 컬러의 더블 식스도 100대 한정 생산 모델로 네이밍에 ‘센츄리, Century’가 붙었으나 상표권 문제로 일본에서 ‘센터너리, Centenary’ 이름을 달고 판매됐다.

한편, 인제 스피디움 클래식카 박물관은 지리적인 단점과 클래식 카라는 친숙하지 않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인제 스피디움 클래식카 박물관을 의미 있게 바라보는 것은 친근한 문화를 소재로 삼고 역사와 스토리를 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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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관장 역시 “수익성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며 자동차 문화의 다양성, 연령대를 넘나드는 유기적 감성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자동차를 바라보는데 있어 수치가 아닌 가치를 쌓아가는 곳, 기억을 되살리고 추억을 재정립하는 곳, 그곳이 인제 스피디움 클래식카 박물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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