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대우 로얄 시리즈 – 번외편
  • 박병하
  • 승인 2018.07.23 16:18

대우 로얄은 대우자동차 역사 상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웠던세월을 함께 한 차다. 대우 로얄은 다양한 차종이 하나의 시리즈를 이루는 제품군으로, 중형 승용차부터 고급 대형 승용차까지 아울렀다. 1980년대 국내고급 승용차 시장을 석권했으며 일부 모델들의 경우, 당대에는 부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했다. 로얄 시리즈의 흥행은 80년대 대우자동차의 눈부신 성장을 상징하는측면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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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이하현대차) 쏘나타와 그랜저의 등장 이전까지, 국내에서 가장크고, 고급스러운 승용차로 통한 로얄 시리즈. 모토야에서는오펠 레코드로부터 시작하여 십수년간 대우자동차의 중핵으로 자리잡으며 국산 고급 승용차의 역사를 써 내려간 그들의 이야기를 상/중/하 3편으로 구성하여연재했다. 이번 연재는 번외편으로, 대우 로얄 패밀리의 최고봉으로태어난 대우자동차 최초의 고급 대형 세단, ‘임페리얼(Imperial)’에대하여 다룬다.

잊혀진 로얄 패밀리의 정점, 임페리얼

한 편, 그랜저의등장을 전후하여 대우자동차는 오일쇼크로 인해 접어 두었던 대형 6기통 승용차 프로젝트를 황급히 재가동시키기에이른다. 이는 그랜저의 등장으로 인해 잃어버린 ‘최고’의 지위를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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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획의 시작은 로얄 살롱 슈퍼의 당초 출시 계획으로부터시작되었다. 대우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각각 포드 그라나다,푸조 604 등, 6기통 엔진을 탑재한 고급세단을 출시하는 것을 보면서 이들과 경쟁하기 위한 6기통 엔진 승용차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따라서 대우자동차는 오펠 레코드의 대형화 모델에 해당하는 세나토르의 3.0리터버전의 현지화 및 출시를 고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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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일쇼크로 인해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관용차량의 기통 수를 4기통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경쟁사들의 6기통 승용차들은 직접적으로 타격을입게 되어, 얼마 판매하지도 못하고 단종을 맞이해야 했다. 그리하여대우자동차는 6기통 세단의 출시 계획을 보류하고, 부득이하게로얄 살롱 슈퍼를 4기통으로 변경해서 출시한 것이다.

오래 전에 백지화된 6기통 승용차 계획을 다시금 꺼내 든 대우자동차는 오펠 세나토르를 설계 기반으로 삼고 전후면에 자체 디자인을 입히는방식으로 개발에 돌입했다. 또한 최신 편의사양으로 무장한 그랜저에 대해 비교우위를 갖도록 각고의 노력을기울였다. 이렇게 탄생한 대우자동차의 첫 최고급 대형세단이 바로 로얄 시리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임페리얼(Imperia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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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은 그랜저를 앞세운 현대자동차를 견제하기 위해서대우자동차가 출시한 로얄 라인업의 최고급 모델이다. 외관 디자인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로얄 시리즈보다도권위적이고 화려한 풍모를 뽐냈다. 특히, 수직에 가갑게 떨어지는캠백(Camback) 스타일의 C필러가 특징적이었으며, 후기형에는 당대 미국의 고급 세단에서 유행했던, C필러에 가죽을덧씌운 랜도우 톱(Landow Top) 스타일을 차용함으로써 독특한 개성을 뽐냈다.

인테리어는 항공기 실내의 이미지를 가미하고 내장재로송아지 가죽 마감을 사용하여 최고급 승용차의 면모를 강조했다. 또한 계기반은 당시 고급 승용차의 전유물처럼통했던 디지털 액정 계기반과 당시 드물었던 트립컴퓨터까지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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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의 심장은 184마력의출력을 자랑하는 오펠 세나토르의 직렬 6기통 3.0리터 CIH 모트로닉 엔진으로, 최신의 전자제어방식으로 작동하는 현대적인엔진이었다. 이 엔진 덕분에 임페리얼은 국산 자동차 최초의 3.0리터급엔진을 채용한 모델로도 기록되었다. 변속기는 일본 아이신(AISIN)정기의 4단 자동변속기를 채용했다. 특히 3.0리터 CIH 엔진은 184마력이라는당대 최강의 출력을 내고 있었으며, 이 엔진의 힘으로 임페리얼은 195km/h최고속도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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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월, 대우자동차는그랜저에 대한 절치부심과 최고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신념으로 완성한 임페리얼을 시장에 전격 출시했다. 국산차최초로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한 대형 세단으로서 등장한 임페리얼은 현대 그랜저에게 빼앗긴 ‘최고’의 이름을 되찾을 기대주로 주목 받았다. 그리고 출시 초기에는 당대 최강의 성능을 자랑하는 3.0리터 직렬6기통 엔진과 로얄 시리즈의 최신/최고급 세단이라는 점이후광 효과로 작용하여 그랜저의 점유율을 조금씩 빼앗아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우자동차가 처음으로 개발한 6기통 최고급 세단의 앞길은 전혀 순탄하지 못했다. 특히 기를 쓰고도입한 오펠의 3.0리터 모트로닉 직렬 6기통 엔진은 냉각계통이 부실하여 주행 중 과열이 빈번했고 유럽산 엔진 특유의 소음은 당시 고급 승용차 소비층의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또한 야심 차게 적용한 캠백/랜도우 톱 스타일 역시 당시 시장에서는지나치게 생소한 스타일로 받아들여져, 그다지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이 뿐만 아니라, 잔고장이 많고 품질도 좋지 못한 편이어서 고급승용차의 이미지를 스스로 갉아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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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의3.0리터 싸이클론 V6 엔진을 얹은 그랜저를 내놓으며 임페리얼에정면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랜저의 3.0리터 V6 엔진은 오펠 3.0 엔진에 비해 낮지만 정숙하여 소비자들의 입맛에맞았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포드 그라나다 등을 통해 6기통엔진의 생산 경험을 조금이라도 쌓아 놓은 덕분에 품질 관리 측면에서도 우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랜저3.0 V6 모델의 출시와 함께, 대우 임페리얼은 엔진 및품질 문제와 잇단 잔고장 등으로 인해 863대라는 초라한 판매기록을 남긴 채 1993년 단종된다.

임페리얼, 그 이후

임페리얼의 등장 이래, 범 대우계열의 대형 세단들은 출시하는 족족 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는 현상이 마치 징크스처럼 나타났다. 물론 이는 징크스라기 보다는 결과적으로 시장의 요구에 다소 맞지 않는 제품들을 내놓아 왔던 구 대우자동차와한국지엠의 실책으로 보는 쪽이 더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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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의 단종 이래, 대우자동차는 한 동안 플래그십급 대형 세단이 존재하지 못했다. 물론대우자동차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자각하고 있었다. 대우자동차는 1994년, 임페리얼에 사용한 3.0리터 직렬 6기통 엔진을 수퍼살롱의 후속 차종이었던 브로엄에 실으며 브로엄을 임시 플래그십으로 두었다. 그러다가 1994년, 대우자동차는일본 혼다기연공업의 플래그십 세단, ‘레전드(Legend)’의부품을 수입하여 조립 생산한 ‘아카디아(Arcadia)’를내놓았으나 지나치게 비싼 가격이 걸림돌이 되어 판매량은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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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이후로는 쉐보레 임팔라의 등장 이전까지상황이 더더욱 심각해졌다. 대우자동차는 아카디아의 뒤를 이을 차기 대형 세단으로, 국내최초의 V8 심장을 탑재한 쉬라츠를 개발하고 있었으나 쌍용자동차인수 이후 체어맨을 획득하게 된 대우는 쉬라츠의 개발을 중지했다. 그러다 모기업인 대우그룹의 해체와함께 대우자동차는 쌍용차와 헤어지게 되었고 승용부문 한정으로 GM이 인수하면서 GM대우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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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대우는 호주 홀덴(Holden)에서 홀덴 카프리스(Caprice)의 현지화 모델인 ‘스테이츠맨(Statesman)’과 베리타스(Veritas)를 잇달아 내놓았지만뒤떨어지는 상품성으로 인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데에는 실패했다. 한국GM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대형 세단의 부진은 계속되었다. 한국GM은 2010년, 미국뷰익(Buick)의 전륜구동 고급 세단 라크로스(LaCrosse)를현지화한 ‘알페온(Alpheon)’을 내놓았으나 포지셔닝실패와 변속기에서 비롯된 파워트레인 성능 부족 문제 등이 불거지며 다시금 실패를 맛봐야만 했다. 알페온이후에 내놓은 쉐보레 임팔라(Chevrolet Impala)는 경쟁차종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던 소비자층으로부터뜨거운 기대와 관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하지 못한 모델 라인업과 GM 본사로부터의 공급 문제로인하여 부진을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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