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현대 엘란트라
  • 모토야
  • 승인 2020.04.03 16:18

2020년을 맞은 지금은 소형 크로스오버의 대두로 인해 힘이 다소 빠지기는 했지만 '준중형 세단'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준중형 세단은 전통적으로 소형차와 동등한 세율이 적용되는 것과 더불어 소형차를 뛰어 넘는 실내공간과 편의성으로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생애 첫 차'로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아 왔다.

하지만 초기의 준중형차는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초기의 준중형차는 중형차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중형차와 동등한 체적을 지니면서도 1,500cc 미만의 엔진을 탑재하여 가격 및 세제 상의 부담을 억제한 형태였다. 준중형차는 크기와 공간은 중형차에 ‘준’하면서도 세제 상으로는 소형차로 분류된, 이름에 어울리는 차급이었다.

준중형차는 80년대의 호황에 따라 소형차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본격적인 중형차는 아직도 부담이 컸던 당시 소비자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고 들었다. 그 중에서도 현대자동차의 스텔라는 덩치는 중형이면서 엔진은 중형이 아닌 이 당시의 준중형차의 전형을 보여주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준중형차들은 어딜 가나 노면의 구배가 큰 우리나라의 도로환경에서 고장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았다. 중형차의 덩치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소형차의 엔진을 그대로 사용했으니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가 새롭게 내놓은 준중형차는 이러한 준중형차의 개발 사상에서 탈피를 이루고, 보다 현대적인 형태의 준중형 세단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을 닦았다. 이 차가 바로 '엘란트라'다.

준중형차의 대명사, 아반떼의 아버지
현대 엘란트라는 현대자동차가 1990년 내놓은 준중형급 세단으로, 4년 여의 시간 동안 총 4,100억원을 투입하여 개발한 독자 개발 모델이다. 차명인 엘란트라는 프랑스어로 '열정'을 의미하는 단어 엘랑(Elan)과 '운송'을 의미하는 단어 트랜스포트(Transport)에서 'Tra'를 따서 지어졌다. 프로젝트명 'J'로 개발된 엘란트라는 쏘나타와 포니엑셀의 중간급의 체급을 갖는 차량으로 개발했다.

현대자동차는 이전의 독자모델이었던 포니와 스텔라 등을 디자인하던 시절에는 이탈리아의 주지아로에게 디자인을 위탁해 왔다. 하지만 엘란트라의 외관 디자인은 현대자동차의 독자적인 디자인이다. 엘란트라의 외관 디자인은 기존 주지아로 스타일의 직선적인 실루엣을 벗어나, 유선형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채용한 점이 특징이다. 이렇게 유선형을 강조한 디자인을 통해 당시의 젊은 소비자 층에게도 상당히 어필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 엘란트라는 길이 4,375mm, 폭 1,675mm, 높이 1,395mm의 컴팩트한 체구를 지녔다. 3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는 B세그먼트급 소형 세단 수준의 크기지만, 당시에는 일반적인 소형 세단보다 큰 몸집을 지니고 있었다. 하체는 전륜에는 맥퍼슨 스트럿, 후륜에 토션 빔 방식의 서스펜션을 채용했다. 또한 크기는 스텔라 대비 작아졌지만 미쓰비시 미라쥬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채용하면서 후륜구동이었던 스텔라 보다도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당시 국산 세단으로서는 선진적인 접이식 뒷좌석까지 제공하여 공간 활용성을 더욱 높였다.

초기형 엘란트라는 미쓰비시의 1.5리터 오리온 SOHC 엔진과 1.6리터 시리우스(4G61) DOHC 엔진을 사용했다. 1.5리터 오리온 엔진은 90마력/5,500rpm의 최고출력과 13.5kg.m/3,000rpm의 최대토크를 내는 엔진으로, 초기형 엘란트라 판매의 주역이었다.

시리우스 엔진은 126마력/6,000rpm의 최고출력과 15.3kg.m/5,0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는데, 이는 당시 동급에서 최강의 성능을 자랑한 기아 캐피탈의 1.5리터 GTX 엔진을 뛰어 넘는 성능이었다. 이 엔진은 본래 미쓰비시 미라쥬의 일본 내수시장용 고성능 버전인 사이보그 트림에 탑재되는 터보 사양 엔진에서 터보차저를 떼어낸 것으로, 당대 최강의 성능을 자랑했다. 현대자동차는 이 엔진을 실은 엘란트라 1.6 모델로 호주 랠리의 1.6리터 이하 비개조 부문에 참전하여 세 차례(`91,`95, `96)의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하지만 시리우스 엔진을 탑재한 모델의 판매량은 매우 저조했다. 왜냐하면 이 당시는 자동차 세법 상 소형차의 기준이 배기량 1,500cc 미만이었기 때문이다.

엘란트라는 1990년대 국내 자동차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여 개발된 자동차였다.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는 88올림픽을 전후하여 이른 바 '3저 호황(저금리, 저유가, 저환율)'의 시대였고, 고속성장과 물가안정 등으로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을 추구하고 있었던 시대였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국내 자동차 시장은 통상적인 세단을 벗어나, 보다 스포티한 성능과 스타일을 가진 자동차에 대한 열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스페셜티카인 스쿠프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며, SUV 및 승합차 등, 레저용 차량도 크게 각광받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현대자동차는 차량의 컨셉트를 '고성능'에 초점을 맞춘 홍보활동을 전개하면서 차별화된 인상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허위/과장광고' 내지는 '포르쉐가 1단으로 주행했다' 등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포르쉐 911과의 대결을 그린 광고 역시 그러한 배경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DOHC'를 '고성능'을 대변하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를 전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엘란트라의 첫 시작은 다소 미약했다. 차의 크기에 유달리 집착했던 국내 시장의 전통적인 성향에 따른 것이었다. 기존의 스텔라 대비 한참 줄어든 몸집을 가진 엘란트라는 출시 초기,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엘란트라는 출시 첫 해에는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1992년도 최다 판매차종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엘란트라는 1993년, '뉴 엘란트라'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리프트를 맞았다. 페이스리프트를 맞은 엘란트라는 전/후면부 디자인을 크게 손봤다. 전면부는 보다 작아진 크기의 반투명 헤드램프와 더욱 유연해진 형상으로 빚어졌고, 뒷모습에서는 'L'자형 테일램프를 도입하여 세련된 느낌을 강조했다. 뉴 엘란트라는 국산 준중형 세단 최초로 ABS와 운전석 에어백이 도입된 차종이기도 하다.

뉴 엘란트라는 기존에 사용했던 1.5리터 오리온 SOHC 엔진만 남기고 엔진 라인업을 일신했다. 새롭게 적용한 엔진은 1.5리터 및 1.8리터 사양의 시리우스 DOHC 엔진들이다. 1.5리터 시리우스 엔진은 108마력/6,000rpm의 최고출력과 14.6kg.m/4,500rpm의 최대토크를 냈다. 이 엔진은 비록 초기형의 1.6리터 사양에 비하면 부족한 성능이지만, 오리온 엔진 사양에 비해 뛰어난 성능을 제공했다. 그리고 1.8리터 사양은 미쓰비시의 1.8리터 시리우스 엔진(4G67)을 현대자동차가 개조한 G4CN엔진으로, 1,796cc의 총배기량으로 135마력/6,000rpm의 최고출력과 17.5kg.m/4,500rpm의 최대토크를발휘했다.

뉴 엘란트라는 초기형 엘란트라의 뛰어난 상품 경쟁력을 발전시켜, 준중형차 시장을 장악했다. 뉴 엘란트라가 출시된 1993년도에는 초기형 엘란트라에 이어, 연간 국내서 가장 많이 팔린 차종에 오르기도 했다. 엘란트라는 쏘나타와 더불어, 현대자동차의 수출 역군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는 엘란트라 초기형부터 꾸준히 수출 시장을 공략했으며, 1994년도에는 단일 모델로 100만대 판매량을 돌파하는 등, 내수와 수출 모두 좋은 실적을 올렸다. 엘란트라의 성공은 1996년 등장한 후속차종인 아반떼(Avante)에게 이어졌다.

엘란트라라는 이름은 비록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그 후신인 아반떼의 수출명으로는 계속 사용되고 있다. 엘란트라는 수출 시장에서 초기에는 로터스 엘란(Elan)의 존재로 인해, 처음에는 'E'를 뺀 란트라(Lantra)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었다. 그러다가 90년대에 기아자동차가 로터스 엘란에 대한 판권을 사들였고, 외환위기 이후 현대가 그 기아를 합병하게 되면서 아반떼XD부터는 '엘란트라'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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