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람보르기니 쿤타치
  • 모토야
  • 승인 2021.07.07 16:08

자동차 전문기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기자는 당연하게도, 자동차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소싯적에는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꿨으며, 그 때문에 대학 또한 집안의 반대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술대학으로 진학했다. 비록 그 꿈은 좌절되었지만 지금은 자동차 전문기자라는 형태로 자동차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하여 기쁨을 느끼며 일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돌아 온 '특별했던차'는 기자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감을 불어 넣어 준 한 자동차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 차는 다름 아닌, 올 해로 탄생 50주년을 맞은 람보르기니 쿤타치(Lamborghini Countach)다.

기자가 이 차를 처음으로 인식하고 접근하게 된 것은 1992년 발매된 '카 앤드 드라이버(Car and Driver)'라는 PC게임의 영향이다. 러너 리서치(Lerner Research, 現 Looking Glass Studios)에서 개발하고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에서 배급한 본 게임은 제목에서 어딘가 익숙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맞다.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미국의 유력한 자동차 전문매체, '카 앤드 드라이버(Car and Driver)'와의 협업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메뉴 화면 등 세세한 부분에서 해당 잡지에 수록되었던 에디터들의 리뷰와 칼럼, 코멘트 등이 실려 있기도 하다.

이 게임은 비록 지금은 너무도 오랜 세월이 지났기에 시청각적인 요소들이 말도 못하게 조잡해 보일 수 있으나, 그래도 당시로서는 '오락'보다는 '시뮬레이터'로서 접근했던 몇 안 되는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게임 내에는 람보르기니 쿤타치 외에도 페라리 F40, 쉐보레 콜벳ZR-1(C4), 메르세데스-벤츠 C11 등의 주옥같은 명차들이 등장했는데, 이는 당시 동명의 매체에서 선정한 최고의 10대 자동차들을 엄선한 것이었다.

기자는 아직 어린이였을 무렵부터 다른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바퀴가 달린 것에 대해 흥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저 PC 게임에 등장했던 람보르기니 쿤타치의 그 인상깊은 외관으로 인해 자동차에 대해 더더욱 크게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비록 조악한 그래픽이긴 했으나, 아직도 기억 속의 쿤타치는 다른 주옥같은 명차들을 제치고 뇌리에 깊숙히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훗날 전시 행사 등을 통해 실차와 직접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다.

람보르기니 쿤타치는 오늘날 람보르기니 디자인의 전통을 확립하고, 누구든 조금이라도 비슷한 스타일을 취하는 순간 '표절'이 돼버리고 마는, 독보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시금석'이다. 쿤타치는 람보르기니의 첫 슈퍼카는 아니지만, 탄생 후 반 세기를 맞은 지금도 람보르기니 그 자체를 상징하는 차로 통한다. 차명인 쿤타치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피에몬테 지역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봤을 때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감탄사에서 차용한 이름으로 전해진다. 과거에는 '카운타크'로 표기했으나 현재는 쿤타치로 표기한다.

람보르기니 쿤타치는 1960년대, 미우라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었을 무렵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창업주이자 사장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 1916~1993)는 사실 슈퍼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자사 직원들이 자신 몰래 개발한 슈퍼카 미우라가 대성공을 거두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슈퍼카 사업에 의욕적으로 뛰어들기로 결심, 미우라를 뛰어 넘을 차기작을 개발하는데 의욕적으로 착수했다.

그리하여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LP500'이라는 이름의 컨셉트카로 처음 선보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쿤타치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람보르기니의 신차 LP500은 일약 화제의 중심에 섰다. 당시의 양산차 레벨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파격' 그 자체와 같은 미래지향적 디자인과 446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5.0리터 V12 엔진은 자동차 업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람보르기니 LP500, 즉 쿤타치의 디자인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당시의 트렌드를 가장 앞선 형태로 반영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는 냉전이 최고조로 달아오른 시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우주개발' 등,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시대 정신이 순수 예술은 물론, 산업디자인 전반에도 확산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를 누구보다도 가장 확실하게 캐치하여 쿤타치를 빚어낸 인물이 바로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다.

자동차 디자인의 역사에서 '파격'이라는 한 단어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이 디자이너는 람보르기니의 첫 슈퍼카인 '미우라(Miura)'를 비롯하여, 2+2 GT카 에스파다(Espada)의 디자인을 맡았고, 이후 쿤타치의 후속 차종에 해당하는 디아블로(Diablo)의 초안을 잡은 인물이다. 카로체리아 기아(Carrozzeria Ghia)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1965년 베르토네에 입사하여 1980년까지 자신만의 색깔이 확고한, 전위적이면서도 직관적인 디자인의 세계를 펼쳤다.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란치아 스트라토스, 그리고 오늘날의 BMW를 있게 해 준 초대 5시리즈(E12) 또한 그의 작품이다.

람보르기니 쿤타치의 외관 디자인은 오늘날 람보르기니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집대성되어 있다. 마치 쐐기를 연상케 하는 납작하고 날렵한 차체 디자인과 차량의 전면과 후면을 시각적으로 연결하는 직선적인 요소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후속 차종인 디아블로에서는 크라이슬러의 입김 때문에 엄청나게 희석되기는 하지만, 아우디에 인수된 이후에 등장한 무르치엘라고부터 본격적으로 부활, 오늘날의 아벤타도르까지 이어지게 된다. 반세기 내내 한 브랜드의 시각 요소를 완전히 지배하는 것도 모자라, 이를 토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일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진실로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이라 할 만하다.

현재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의 디자인 센터 본부장을 맡고 있는 밋챠 보거트(Mitja Borkert)는 이렇게 말한다. 

“디자인적 관점에서 보면, 람보르기니의 다른 모든 디자인적 요소가 수정되더라도 이 특유의 직선 라인이 남아있다면 람보르기니의 과거와 현재 모델들은 시각적 연속성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말은 이러한 극단적인 쐐기형의 차체 형상과 직선적인 스타일 요소들이 존재하는 한, '어느 누가 보아도 람보르기니'로 통하게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람보르기니 자체에서도, 쿤타치를 자사 양산차 디자인의 모토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쿤타치, 그리고 컨셉트 버전인 LP500의 외관 디자인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독특하게 설계된 도어 윈도우다. 이는 윈도우 개폐 등과 같은 기능적인 문제와 더불어서, 이 기능 상의 한계로 인한 요소를 또 다른 시각적인 요소로 풀어 낸 간디니의 천재성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날 람보르기니를 상징하는 요소인 시저 도어(Scissors Doors) 역시 그의 천재성을 대변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시저 도어는 일반 도어와 같이, 힌지는 차체 앞쪽에 붙지만 동작의 중심축이 세로축이 아닌, 가로축에 있다. 이 때문에 마치 도어가 가위(Scissor)처럼 움직인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시저 도어는 1968년 등장한 알파 로메오 카라보(Carabo) 컨셉트에 적용된 것이 시초였지만 이를 양산차에 적용한 것은 람보르기니가 최초다.

그런데 이렇게 독특한 스타일로 개폐되는 방식을 적용한 까닭은 승하차의 편의성을 위한 것이었다. 쿤타치를 비롯한 고성능 스포츠카의 골격을 잘보면 대게 욕조에 가까운 형태를 띈다. 이러한 형태를 띄는 이유는 중량의 증가를 억제하면서 구조강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측면의 골조 높이가 운전석 위치보다 올라간다. 이렇게 높아진 구조에 그대로 일반형 도어를 적용할 경우, 승하차를 위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없다. 즉, 타고내리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로터스의 차들이 승/하차가 심각하게 불편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위쪽으로 열리는 형태의 도어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 시저도어는 람보르기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쿤타치의 심장은 초기에는 미우라에 사용되었던 3.9리터 V12 엔진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엔진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미우라의 엔진이 본래 가로배치형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쿤타치는 기반설계부터 미우라와는 완전히 달라지면서 엔진을 세로로 장착하는 방식을 채용했다. 이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개량을 거쳐야 했다. 쿤타치의 초기형에 해당하는 LP400에 얹힌 이 엔진은 375마력의 최고출력과 36.5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였다.

물론, 그 람보르기니가 미우라와 동일한 수준의 성능에 만족할 리가 없었다. 엔진을 세로로 배치하는 구조를 채용한 것은 더욱 큰 배기량의 엔진을 감당하기 위한 것이었고, 실제로 이 차를 위한 신형 5리터급 V12 엔진도 이미 개발한 상태였다. 그러나 람보르기니의 재정 상황은  쿤타치를 공개했을 당시만 해도 그다지 여의치 않았다. 따라서 기껏 새로이 엔진을 개발해 놓고도 양산할 여력이 부족해 탑재를 미처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쿤타치는 10년동안 미우라 엔진 기반의 3.9리터 하나로 버텨야 했다.

물론 람보르기니가 10년 동안이나 이 엔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타도 페라리를 외치며 3.9리터 엔진의 성능개선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리하여 쿤타치는 1984년 페라리 288GTO의 등장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차 타이틀을 지켜냈다. 그리고 1982년 등장한 쿤타치 LP500 S부터 비로소 4.8리터로 배기량을 확대한 차세대 V12 엔진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외관에 제대로 걸맞은 힘을 내기 시작했다. 특히 최대토크가 42.6kg.m으로 향상되면서 한층 강력해졌다.

그리고 1985년에 등장한 '최후의 쿤타치', LP500 콰트로발볼레(QuattroValvole 이하 LP500 QV)에 이르면 배기량은 5.2리터(5,167cc)까지 확대된다. LP500 QV에 탑재된 이 엔진은 훗날 무르치엘라고까지 이어지는 람보르기니 V12의 설계 기반이 된다. 이 엔진은 이름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실린더 1기 당 4개의 밸브를 사용했고, 카뷰레터의 위치를 측면에서 상부로 옮기면서 흡배기 효율을 높였다. 쿤타치 LP500 QV의 V12 엔진은 455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과 50.1kg.m에 달하는 최대토크를 뿜어냈다. 이에 따라 1984년 페라리 288GTO에 빼았겼던 '가장 빠른 양산차' 타이틀을 재탈환하는 데 성공했고, 86년 등장한 '괴물' 포르쉐 959보다 더 높은 출력을 자랑했다.

반 세기의 역사 동안 람보르기니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통해왔던 람보르기니 쿤타치는 앞으로도 람보르기니의 '근본'이자 아이콘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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