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택시 이야기 - 상편
  • 모토야
  • 승인 2023.01.16 18:35

택시는 여러모로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버스나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은 요금이 저렴하지만 지정된 운행시간에 맞춰서 지정된 정류장 혹은 역사까지 이동해야 한다. 특히 이용할 수 있는 시간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전 0시 이후의 심야 시간대에는 이용이 제한된다. 물론 서울 버스의 경우에는 이른 바 '올빼미버스'라고 불리는 심야시간대 전용 노선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운행하는 구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 택시는 아주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가치를 발한다. 택시는 도로가 있는 곳이라면 탑승자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승용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 주는 교통수단으로, 자동차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시점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운행을 시작한 택시는 1912년, 서울의 한 부자가 일본인 2명과 함께 미국제 포드 모델 T 2대를 들여와 서울 내에서 시간제로 임대영업을 한 것이 최초 사례다. 이 당시의 택시는 지금의 택시와는 달리, 일종의 리무진 서비스에 준하는 것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요금의 경우, 지금의 광주광역시에서 목포시까지(약 89km) 편도 운임이 18원, 전주시에서 익산시까지(약 28km)의 편도 운임이 2원이었는데, 당시 쌀 60kg의 가격이 대략 6~7원 사이였다는 점에 비춰보면 대단히 높은 요금이었다. 이 때문에 최초의 택시 서비스는 부유층, 혹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일본인 정도나 돼야 이용해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직접 운수업체를 차려 상업운행을 한 사례는 1919년, 노무라 겐조가 세운 경성택시회사가 최초다. 미국에서 들여온 닷지제 승용차 2대로 상업운행을 시작한 이 택시회사는 주로 한반도 내의 일본인들을 상대로 영업을 했다고 한다. 뒤이어 1920년도에는 계림자동차조합이라는 새로운 택시회사가 설립되었는데, 이 회사는 고급 세단형 승용차 4대로 택시영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운임을 산정하는 미터기가 없었기 때문에 대체로 전세 내지는 시간제 택시로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1926년도에 '아사히 택시회사'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미터기가 설치된 현대적인 택시를 도입, 거리에 따른 요금제를 적용해 운용되어 현대적인 택시영업이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인 1950년대에는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태동기임과 동시에 택시의 대중화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택시로 주로 사용되었던  국제차량제작에서 제작한 '시-발'이라는 이름의 지프형 자동차로, 전쟁 이후 미군이 한국 내에 불하(拂下)하거나 폐차한 군용 지프 차량을 재생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자동차다. 이 차량은 당시 국내의 열악한 도로사정에서도 큰 무리가 없는 형태였기에, 택시 운수 용도로 무려 500여대가 팔려나갔다. 이로 인해 시-발은 본래의 이름보다는 '시발택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서 시발택시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의 중앙정보부가 주도하여 세운 '새나라자동차'를 통해 일본 닛산의 블루버드(Bluebird) 차량 400대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1961년 군사정권이 제정한 ‘자동차공업 육성법’을 통해 세워진 새나라자동차는 당시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었던 국내 자동차 업계의 싹을 잘라버린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이 때문에 폐차된 군용 차량을 재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국내 자동차업계가 크게 반발했다.

새나라자동차는 '새나라 양장미인'이라 불리며, 빠르게 국내 자동차 시장에 침투했다. 특히 1962년 아시아 영화제를 개최를 앞두게 된 시점에서 이를 외국인 관광용도로 판매하려고 했던 것을 몽땅 일반택시로 용도를 변경하는 바람에 전국의 택시업계는 낡고 조악한 시발택시를 버리고 새나라자동차로 갈아타기 시작하면서 시발택시는 급속도로 몰락하고 만다. 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하여 서울 시내에서 영업하는 택시들에 현대적인 미터기가 보급되면서 택시 운수제도가 정착하게 되었다.

1965년도에는 택시 요금인가 권한을 각 광역 지자체장(시장, 도지사)에 위임하게 되면서, 택시운수 사업의 방식도 변화를 맞게 되었다. 교통부 고시 제 1111호로 발효된 자동차운송사업체 기업화방안 제5항-구역업종의 다원화 방안에서 개인택시면허요건을 새롭게 규정하며 택시운수업의 재정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66년도에는 택시요금 또한 재조정되었다. 서울의 경우에는 기본 요금이 2km 60원, 주행 추가 요금은 500m 당 10원으로, 대기료는 10분 당 40원으로 조정되었고, 지방의 경우에는 각 시/도 관할관청에서 도로사정과 교통 수요를 감안해 35~60% 점위 내에서 별도조정이 가능해도록 변경되었다가 1967년 다시 운임을 서울과 동일한 수준으로 통일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인택시'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신진자동차가 4대의혹 사건으로 망해버린 새나라자동차 공장을 인수, 일본 토요타자동차와 기술제휴를 맺고 신진 코로나 등의 승용차를 출시해 이를 택시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신진 코로나는 당시 국내의 도로사정과 잘 맞는다는 평가를 받으며,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택시 모델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후 현대자동차가 미국 포드자동차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코티나' 차량을 생산하면서 택시 업계에서 양강구도를 이루기 시작했다.

다음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