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IS250C
  • 김기범
  • 승인 2012.05.30 00:00

2009년 7월 1일, 싱가포르의 센토사 섬에서 아시아 지역 기자를 대상으로 렉서스 IS250C 시승회가 열렸다. 행사는 IS250C와 IS250을 번갈아 몰면서 차이를 가늠해보고, IS250C의 치프 엔지니어 요네다 씨와 인터뷰를 갖는 순서로 진행됐다. 그는 차체 강성과 정숙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소개했다. 아울러 국내 시승 때 불거진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줬다. 시승해본 결과, IS-C와 IS는 별도로 개발됐을지언정 운전감각만큼은 서로를 쏙 빼닮았다. 




두꺼운 유리창의 아래쪽이 푸르스름해졌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춘 모양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망망대해. 넘실대는 바다 위에 수많은 배들이 우두커니 떠 있다. 이제 거의 다 왔구나싶었다. 선박의 주차장과 다름없는 싱가포르 앞바다. 그 진풍경을 일 년여 만에 다시 본다. 그런데 이번엔 경유가 아니다.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밖으로 당당히 걸어 나설 것이다.

창이공항을 찾은 게 벌써 세 번째. 그러나 입국은 처음이다. 벌금 얘길 하도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죽하면 ‘Fine(벌금) Country’란 우스갯소리마저 있을까. 그러나 입국심사는 싱거웠고, 세관검사는 술렁술렁했다. 싱가포르엔 피우던 담배 한 갑 빼곤 반입금지란 얘기에, 인천공항면세점의 담배 코너를 눈 딱 감고 지나쳤던 애연가 일행은 울상이 됐다. 

출국장에서 누군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렉서스라고 쓰인 푯말을 소중히 안고서. 그렇다. 나를 포함, 네 명의 기자를 싱가포르로 초청한 건 렉서스였다. IS250C 시승을 위해서였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독자가 있을 듯하다. 항상 해외시승이 국내시승보다 먼저였으니까. 이번엔 순서가 뒤바뀌었다. 그만큼 한국시장에 앞서 출시했다는 얘기도 된다.

 



리조트로 개발된 섬, 센토사

공항 밖으로 성큼 나섰다. 예상보단 덥지 않다. 비행기에서 기장이 전한 싱가포르의 이날 기온은 32℃. 마침 우리나라도 후텁지근한 찜통더위에 시달릴 즈음이어서, 별 위화감을 느낄 수 없었다. 렉서스 GS 두 대가 스르르 우리 앞에 멈춰 섰다. 하마터면 운전석 문을 열 뻔했다. 싱가포르의 자동차 통행방향과 운전석은 우리와 반대. 영국 식민지 문화의 잔재다.

목적지인 센토사 섬으로 향하면서, 싱가포르의 토요타 아시아태평양 지사에서 렉서스 마케팅을 담당하는 조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싱가포르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시속 90km이며, 과속카메라가 영국처럼 차의 꽁무니를 찍는다는 사실을 ‘특히’ 귀담아들었다. 도로 위엔 다양한 차가 섞여 달린다. 조안이 “토요타의 점유율이 가장 높다”고 귀띔한다.

적도에 가까워 일 년 내내 더운 나라 싱가포르. 풍경은 더없이 이국적이다. 야자수가 우거졌고,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가 풀숲에서 날아올랐다. 건물은 하나같이 고층인데, 아파트의 비중이 높았다. 고속도로는 항만 옆을 끼고 지났다. 문득 떠올라 물었다. 왜 배들이 바다에 한 가득 서 있는지. 듣고 보니 의외로 싱거웠다. 항구의 정박 공간이 넉넉지 않아서란다. 

땅이 비좁은 데다 산업화가 일찌감치 진행되어 이젠 서서히 늙어가는 도시인 줄 알았더니 온통 건설현장이다. 단위면적 당 타워크레인의 수는 태어나서 본 곳 가운데 가장 많았다. 얼마 전 뉴스에서 화제가 됐던, 쌍용건설이 신공법으로 짓고 있다는 세계 최초의 ‘ㅅ’자 모양 빌딩도 눈에 띄었다. 센토사 섬에 가까워질수록 건설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조안의 차분한 설명이 이어진다. “센토사 섬은 관광객을 위해 조성된 상업 지구였어요. 그런데 최근 고급 아파트를 앞 다퉈 짓고 있어요. 새로 늘린 부지에 호텔도 속속 들어서고 있고요. 얼마 있으면, GE가 짓고 있는 테마파크,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문을 열거예요.” 절절 끓는 밖과 달리 서늘한 냉기로 가득 찬 렉서스는 어느덧 센토사의 톨게이트로 들어섰다.

나중에 렉서스 측이 전한 자료를 보니, 센토사 섬은 과거 한가로운 어촌 마을이었다. 이후 영국 식민지 시절 군대의 요새로 쓰이다가, 1967년 싱가포르가 독립되면서 이양됐다. 정부는 섬을 내국인 및 외국인을 위한 리조트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섬의 이름을 공모했다. ‘평화롭고 조용한 말레이’란 뜻의 휴양 섬, 센토사는 그렇게 태어났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비싼 호텔 

센토사 섬에 들어가려면 거창한 관문에서 입장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섬 안의 투숙객은 예외인 모양이다. 직원과 몇 마디 주고받더니 그냥 지나친다. 섬이라지만, 번듯한 도로로 연결됐으니 육지나 마찬가지. 관광객은 대개 케이블카를 타고 들어온다. 섬 안은 온통 골프장 딸린 호텔 천지. 우린 그 가운데 싱가포르에서 가장 최근 문을 열었다는 호텔로 향했다.

‘카펠라(Capella) 싱가포르’. 별의 이름을 딴 이 호텔은 3개월 전 문을 열었다. 식민지 시절 영국군의 요새로 쓰던 건물을 개조해 완성했다. 호텔의 등급을 나타내는 별은 무려 여섯 개. 싱가포르에서 육성 호텔은 두 개뿐이다. 최근 지어진 만큼 시설이나 값은 카펠라 싱가포르가 으뜸이다. 분에 넘치게, 싱가포르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호텔에 묵게 됐다.

직원을 따라 방으로 향했다. ‘8’자 모양의 건물은 인도네시아 출신 건축가의 작품. 방은 과연 으리으리했다. 벽엔 스탠드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소니의 대형 TV가 걸렸고, 아이팟을 꼽으면 바로 음악을 트는 보스 오디오 시스템을 갖췄다. 침대에선 초대형 유리창을 통해 센토사의 울창한 숲과 짙푸른 앞바다가 시원하게 한 눈에 내다 보였다.   

에스프레소를 한 잔 내려 마신 뒤 방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첫째 날인 6월 30일의 남은 일정은 자유시간과 저녁식사. 한국토요타와 토요타 아태 지사의 직원은 우릴 ‘오차드 로드’(Orchard Road)란 쇼핑가에 풀어 놓았다. 그리고 저녁 7시에 만나자며 총총 사라졌다. 한 명을 빼곤 죄다 싱가포르 초행길인 우린, 결국 사이좋게 뭉쳐 다니기로 합의를 봤다. 아직은 서먹한, 네 남자의 동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싱가포르에 대한 이야기가 과장됐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깨끗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싱가포르 역시 사람 사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거리를 거닐면서 자유로이 담배를 피웠고, 구석진 곳에선 드물게나마 꽁초도 눈에 띄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담배 값은 대단했다. 한 갑에 1만 원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거리의 재떨이엔 필터 직전까지 알뜰살뜰 피운 꽁초로 가득했다.

국제도시를 자청한 홍콩보다 인종은 더 다양해 보였다.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공존했다. 마침 싱가포르의 쇼핑가엔, 왜 마지막인 줄은 알 수 없었지만, ‘Final Sale’ 표시가 즐비했다. 기대에 가득 찬 우린, ‘쇼핑의 달인’ 남성지 기자를 앞세워 쇼핑몰로 들어섰다. 굉장했다. 10~20%는 세일도 아니었다. 50~70%까지 할인율 한 번 화끈하다. 그러나 환상은 곧 깨졌다. 막상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결코 싸지 않았다. 최근 널뛰기한 환율 탓이다. 




IS250C가 1억6천만 원?

저녁 7시, 약속장소엔 어김없이 렉서스 GS 두 대가 나타났다. 싱가포르의 토요타 아태 지사에 2년 예정으로 파견 나온, 한국토요타의 김준식 대리와도 인사를 나눴다. 뜻밖에, 그는 나와 구면이라고 했다. 몇 년 전 경주에서 열렸던 렉서스 LS460 시승회 때 내 옆자리를 지켰던 주인공이었다고.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날 아는 이를 만나니 두 배로 반가웠다. 

우린 GS의 뒷좌석에 올라 식당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난 질문을 쏟아냈고, 김 대리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놨다. 둘의 공통관심사는 역시 자동차. 그는 싱가포르 정부는 자동차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제도를 운영 중이라고 했다. 우선 ‘세금폭탄’. 현대 NF쏘나타가 6천만 원, 렉서스 IS250C는 무려 1억6천만 원이란다. 또한 차를 살 수 있는 자격증을 사야 한다. 경매로 파는데, 비쌀 때는 1천500만 원까지 치솟는다고. 게다가 이 자격증은 10년마다 새로 사야한다. 자동차 매니아 입장에선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식당은 왁자지껄했다. 우린 토요타 아태지사 직원들과 원탁에 둘러앉았다. 주문하면 수조에서 바로 잡아 조리해주는 방식이었다. 우물쭈물하는 우릴 보곤, 현지 직원이 알아서 주문한다. 칠리 새우를 시작으로 다양한 해산물이 서빙 됐다. 오리란 이름이 붙은 조개는 회로 썰어 나왔다. 그 옆엔 전골냄비가 놓였다. 싱가포르에서도 날 것을 즐겨먹는구나 싶었다.

조개회를 다 비울 무렵, 테이블로 온 식당 직원의 표정이 가관이다. 그가 열어 보인 전골냄비 속에선 건더기 없는 국물이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샤브샤브였던 거다. 우린 껄껄 웃었지만, 싱가포르 현지 직원은 머쓱해 어쩔 줄 몰라 했다. 드디어 싱가포르의 별미, 칠리크랩이 나왔다. 게 껍데기에 볶음밥을 비벼 먹는 내 모습에, 현지인들이 놀란 토끼눈을 떴다.

김 대리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단다. 그는 싱가포르의 토요타 지사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마케팅 계획을 짠다. 김 대리는 “대부분의 나라가 차츰 불경기의 여파에서 벗어나고 있는데, 유독 한국만 환율이나 판매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까진 국내에서 렉서스 한 대 팔 때마다 꼬박꼬박 적자가 쌓여가는 형편이란다.

조안은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싱가포르의 첫 인상이 어땠는지 물었다. “법이 엄격해서 숨 막힐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던걸요.” 기대했던 답은 아니었는지, 그녀의 웃음이 어색했다. 좋았다는 표현이었는데, 괜스레 미안했다. 식사를 마친 우린 어둠에 싸인 숙소로 돌아왔다. 센토사 섬의 칠흑 같은 밤하늘에, 이름 모를 별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IS와 별개로 개발된 모델

7월 1일 아침, 날 깨운 건 알림시계가 아닌 새소리였다. 이번 여정의 엑기스가 압축된 하루가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아침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을 찾았는데, 우리끼리 주고받는 말을 들은 여직원이 반갑게 한국어를 건넨다. 전직 KTX 승무원이라고 했다. 노조 문제로 해고당한 뒤 동료 다섯 명과 함께 이 호텔로 취직했다고 했다. 뭐가 가장 그립냐고 묻자 예상을 깨는 답이 돌아온다. “소주요.” 우린 동포애에서 우러난, 극진한 서비스를 받았다.

오전 8시,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보다 해가 확실히 늦게 뜬다. 이 시간이면 서울은 대낮인데, 하늘은 아직도 어스름했다. 기자단은 단출했다. 한국 팀 네 명 외에 필리핀 기자 둘이 더 있었을 뿐이다. 오후엔 기자가 몇 더 온다고 했다. 사회자의 인사말에 이어, 렉서스 IS250C와 IS350C의 산파(産婆), 치프 디자이너가 마이크 앞에 섰다.

50대 초반의 수석 엔지니어 요네다 케이이치(光田啓一) 씨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1983년 토요타자동차에 입사해 보디 디자인과 전기 배선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렉서스 모델 가운데 1세대 SC와 3세대 LS 개발에 참여했다. 2000년엔 부수석 엔지니어로 승진해 제품개발 부서로 옮긴 뒤 컨셉트카 LF-A의 개발을 맡았다.

당시 그는 ‘운전의 즐거움’을 알기 위해 갖가지 프리미엄 스포츠카를 몰아보는 동시에 테스트 드라이버와의 토론을 즐긴 것으로 전해진다. LF-A 프로젝트를 마친 뒤 그는 렉서스 IS-C 개발팀을 이끌게 됐다. 그는 “렉서스 IS-C는 IS와 별도로 개발된 모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말문을 열었다. 아울러 디테일과 승차감에 무척 신경 썼다고 강조했다.

“외부로 드러난 IS-C의 패널에서 보닛, 헤드램프, 도어 핸들, 그리고 사이드 미러를 빼면 IS와 겹치는 건 하나도 없어요. 파워트레인, 그리고 대시보드나 스티어링 휠 등 인테리어의 크고 작은 부품을 다 헤아린들, 둘의 공통분모는 20%를 넘지 않습니다. 무게는 약간 늘었어요. 보디에서 60kg, 하드톱 시스템 60kg 등 총 130kg이 추가됐지요.”

그는 컨버터블의 핸디캡인, 차체 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소개했다. “A필러와 이어진 로커패널의 크기를 IS보다 50% 키웠어요. 소음을 줄이기 위해 윈드실드는 음향 제어 유리를 썼고요, 시트 위치나 윈도의 디자인까지 신경 썼어요. A필러와 뒤 펜더엔 추가로 방음재를 채워 넣었지요. 오디오는 톱을 열면 자동으로 음압(dB)을 높이는 기능을 담았고요.” 

 



폭우 속에서 시작된 시승 

프레젠테이션은 금세 끝났다. 나머지 궁금증은 시승 뒤에 예정된 치프 엔지니어와의 개별 인터뷰 때 풀기로 했다. 때마침 샤워기의 세찬 물줄기 같은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요네다 씨가 껄껄 웃으며 농을 건넨다. “오늘 제대로 시승할 수 있으시겠네요. 정숙성과 톱의 밀폐성을 생생히 경험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기자들은 어쩐지 아쉬운 표정이다.

이날 시승엔 싱가포르의 서쪽과 동쪽을 도는 두 개의 코스가 준비됐다. 어제 김 대리의 설명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자동차로 횡단하는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만큼 작은 나라. 그래서인지 코스엔 사진 찍을 만한 곳, 커피 브레이크 등 숨 돌릴 포인트를 아기자기하게 마련했다. 설명을 듣고 지도를 보니, 그래도 꽤 시간이 걸리겠다 싶어 조바심이 일었다.

오랜만에 타는 오른쪽 운전석. 행여 좌·우회전 때 와이퍼 휘두를까 싶어, 깜박이 위치부터 확인했다. 역시나 정반대. 꼼꼼한 렉서스답게, 오디오의 볼륨 스위치나 기어레버가 움직이는 골마저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것처럼 국내에서 탔던 모델과 반대다. 불현듯 BMW 1세대 미니를 시승하면서 보닛 여는 레버 찾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 동반석 다리 공간에서 찾았다. 오른쪽 운전석 설계를 그대로 쓴 탓이었다. 물론 2세대에선 개선됐다.

시트벨트를 당겨 매는 데, 슬그머니 와 있던 요네다 씨가 샐쭉 웃으며 말을 건넨다. “원하시면 뚜껑을 열어도 돼요. 시속 40km 이상의 속도에선 빗물이 거의 들치지 않을 거예요. 대신 A필러 양쪽 끝이 두 가닥의 물줄기를 쏠 텐데, 그것만 괜찮다면요.” 참 밝은 분이시다. 범생이 스타일 혹은 권위적인 모습으로 각인됐던 엔지니어의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

조안의 설명에 따르면, 시승차는 싱가포르의 렉서스 딜러에서 빌려온 것. 세금 때문에 차 값이 워낙 비싸서인지 내비게이션을 어울린 모니터 같은 옵션이 빠져 있다. 진행차 RX350도 모니터와 리모트 컨트롤이 없었다. 그래도 1억 원을 훌쩍 넘으니, 현지 직장인의 평균적인 소득으로 미뤄 짐작할 때 렉서스는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될 드림카가 분명했다.

이제 떠날 시간.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우린 호텔을 나섰다. 흐뭇했다. 그것도 잠시, 통행방향이 반대인 데다 도로마저 좁아 긴장이 몰려들었다. 다행히 곧 익숙해졌다. 국내에서 오른쪽 운전석 차 모는 것보다 자연스러웠다. 잠시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에 잔뜩 긴장했던, 옆자리의 T 잡지 C 편집장의 표정도 한결 누그러졌다. 빗줄기가 서서히 가늘어졌다.




IS 세단 쏙 빼닮은 운전감각 

지붕을 씌운 IS250C의 운전감각에서 IS 세단과의 차이를 찾기는 어려웠다. 계기판과 대시보드 등 눈앞에 펼쳐진 풍경도 판박이다. ‘모난 돌은 정 맞는다’는 일본 속담의 영향인지, IS250C는 IS250 세단과의 ‘차별화’보단 ‘동질화’를 추구했다.
 
파워트레인에 변주를 둬 라인업을 더 다채롭게 꾸밀 수도 있을 텐데, 렉서스는 욕심을 버리고 실속을 챙겼다. 어쩌면 IS-C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과감한 결정이었을 수 있다. 불경기에 수요가 많지 않은 니치 마켓을 노렸으니까.

IS250C의 실내는 더없이 쾌적했다. 그리고 요네다 씨가 강조했던 것처럼 조용했다. 유리창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조차 사라졌을 만큼. 와이퍼 스치는 소리가 간간이 먹먹한 정적을 깰 뿐이다.

일반도로 시속 60km, 고속도로 시속 90km의 빗장이 걸린 싱가포르에서, IS250C의 성능은 차고도 넘쳤다. IS250C의 파워트레인은 IS 세단과 판박이. V6 2.5ℓ 207마력 직분사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로 구성된다. 엔진과 변속기는 초기반응이 빠르다. 굉장히 민감하다. 민첩한 초기 가속과 중저속에서의 철저한 방음은 렉서스 라인업 전반에 걸친 특성이다. 불특정 다수의 취향을 치우침 없이 보듬을 절묘한 세팅. 렉서스 인기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 

앞서 설명했듯, IS250C는 하드톱 시스템을 짊어지고 차체 강성을 확보하느라 130kg이 늘었다. 그러나 체감하는 가속성능은 0→시속 100km 8.3초의 IS250과 별반 차이 없다. 운전자의 경험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이 정도의 가속은 스릴과 경쾌함의 경계로 볼 수 있다. 차에 압도당하는 두려움은 없되 막힘없이 시원스레 몰아붙일 수 있을 정도라는 얘기다.

서스펜션은 렉서스 가운데 가장 탄탄하다. 아울러 마이너체인지를 거친 IS250처럼, 안전과 관련된 전자 장비를 유기적으로 연결한 ‘차체 역학 통합 제어 시스템’(VDIM)을 갖춰 회전감각이 민첩하다. 국내에서 굽잇길을 탈 땐 세단보다 꽁무니가 살짝 늘어지는 느낌이었는데, 싱가포르에서 차선을 바꾸고 교차로를 돌아나갈 땐 그 차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IS250 세단으로 옮겨 타고선, 이런 느낌에 확신을 갖게 됐다.

한편, 코스에 마련된 각 포인트는 예상보다 훨씬 가까웠다. 유람하듯 느긋하게 달렸는데도 5~10분마다 하나씩 나타났다. 싱가포르가 얼마나 아담한 도시인지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우린 커피 브레이크가 예정된 카페에 도착했다. 미리 와서 기다리던 포토그래퍼가 플래시 세례를 날린다. 스타라도 된 듯 우쭐해서는 차에서 내렸다.




뜨거운 관심 모은 IS250C

에스프레소 한 잔과 마카롱을 드는 사이, 구름을 뚫고 햇살이 쏟아졌다. 화창해진 날씨에 포토그래퍼가 더 신났다. 어서 뚜껑을 열자며 아우성이다. 톱은 스티어링 휠 왼편 대시보드의 스위치로 여닫는다. ‘안전제일’ 렉서스답게, 차가 꿈쩍이라도 하면 톱은 열리지 않는다. P나 N까진 아니되, 차가 완전히 멈춰선 상태에서만 작동된다.

열리는 모습은 이렇다. 먼저 트렁크 뚜껑이 뒤로 젖혀진다. 그리고 지붕이 세 조각으로 쩍 쪼개진다. 이어서 지붕은 착착 포개지면서 트렁크 속으로 감쪽같이 숨고 트렁크가 닫힌다. 전반적인 동작은 매끄럽고 조용하다. 지붕을 거둬내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인테리어가 통째로 드러난다. 앞 유리를 시작으로 뒷좌석까지 부드러운 타원을 그리는 조형미가 멋스럽다.

지붕을 감춘 부위가 봉긋 솟았는데, 트렁크 윗면의 두 가닥 주름과 뒷좌석 머리받침, 그리고 롤 오버 바로 절묘하게 감쌌다. 핸디캡을 디자인 특성으로 승화시켰다. 물론 뚜껑을 닫았을 때의 디자인도 매력적이다. 트렁크의 주름을 지붕으로 이어, 등 근육 불거진 채 잔뜩 웅크린 생명체 같다.

렉서스 IS250C의 트렁크 공간은 지붕을 수납했을 때 기준으로 250ℓ. 빠듯하긴 하지만, 골프백 한 개는 실을 수 있다. 뒷좌석 공간이 있으니, 둘 혹은 셋이서 골프장 가는데 별 문제가 없는 셈이다. 뚜껑을 씌워 쿠페로 변신했을 때는 트렁크에 골프백을 두 개까지 삼킨다. 렉서스 측은 인피니티 G37 컨버터블의 트렁크보다 넓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참고로 IS250 세단의 트렁크 공간은 378ℓ다. 

싱가포르의 푸른 하늘을 내려 담은 우린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포토그래퍼가 자기 차를 몰고 쫓아왔다. 그렇게 만류했건만, 그는 직접 운전을 하면서 사진을 찍는 묘기를 선보였다. 차의 위쪽 절반을 드러내고 시속 90km 안팎으로 달리는데도, 머리칼은 느릿느릿 살랑거리는 수준에 머문다. 세단의 유리창을 활짝 열어젖힌 것보다 오히려 차분하고 평화롭다.

햇볕 인심이 후한 나라지만 차 값이 비싼 탓인지 컨버터블은 드물었다. 게다가 싱가포르에서 IS250C는 어제 선보인 완전 신차. 주위 운전자의 시선이 집중됐다. 옆 차선의 차들은 속도를 맞춰 달리며 우릴 살폈다. 깜박이를 넣으면 기꺼이 속도를 줄여가며 길을 터줬다. 정체구간에서의 양보도 식은 죽 먹기였다. 이 맛에 특별한 차를 타는구나 싶었다. 




자체 개발 고집한 하드톱

IS250C에 이어 IS250 세단까지 몰아본 뒤 시승은 막을 내렸다. 이제 남은 호기심을 풀 차례. 렉서스만큼이나 적막한, 호텔의 회의실에서 요네다 씨와 마주 앉았다. IS250C의 핵심은 장르의 특성상 역시 하드톱. 렉서스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인지, 외주 업체에 맡겼는지 물었다. 역시나 직접 개발했단다. 사실 돌아올 답을 빤히 예상하긴 했다.

“토요타·렉서스엔 어려운 문제일수록 직접 부딪혀 해결하는 문화가 있어요. 이번 하드톱 개발이 그런 경우였지요.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많은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어요. 훌륭한 인재도 개발할 수 있었고요. 소프트톱도 고민했어요. 특유의 멋스러운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위급인 SC면 모를까 IS에선 실용적 컨셉트가 맞는다고 판단했지요.”

토요타든 렉서스든 남의 영향력에 좌우되는 걸 끔찍이 싫어한다. 토요타 창업 초기 극심한 자금난으로 은행에 휘둘려본 이후 생겨난 전통이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가 빚 한 푼 없이 경영된다. 이런 특성은 개발에도 이어져서, 뭐가 됐든 토요타의 울타리 안에서 해결한다. 변속기 전문인 아이신이나 전기 관련 부품을 만드는 덴소 모두 토요타의 자회사다.

왜 차가 움직일 때 톱을 작동할 수 없게 만들었는지도 궁금했다. “안전을 위해서지요. 저속이라도 움직이면서 톱을 여닫게 되면 아무래도 운전의 집중도가 떨어지거든요. 기술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윈드 터널에서 테스트한 결과 IS250C의 하드톱은 15m/s의 맞바람에서도 작동됩니다. 그러니까 시속 50km로 달릴 때도 여닫을 수 있는 셈이지요.”

출시배경도 알고 싶었다. 그는 “렉서스의 라인업 확장 전략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2003년 렉서스 개발센터가 설립된 이후 라인업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어요. 신형 RX까지 더하면서 밑그림이 얼추 완성됐는데, 스포츠 스페셜티카가 없는 거예요. 2005년 신형 IS를 선보일 때 컨버터블 버전의 검토에 들어갔지요. 그리고 2006년 IS-C 프로젝트가 막을 올렸어요. IS와 별도의 팀이 꾸려졌고, 차체설계부터 다시 시작했지요.” 

명색이 스포츠 스페셜티카인데, 엔진이나 머플러가 너무 조용한 것은 아닌지 물었다. “미국에서 인피니티 G37 컨버터블을 탔는데, 사운드가 멋지더군요.” 폭탄선언이 나오나 싶어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계속 들으니 거슬리던데요. IS-C의 정숙성은 스포티의 또 다른 해석이에요. 귓가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면서 차를 수족처럼 부리는 즐거움에 빠지는 게, 훨씬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유쾌한 그다운 명쾌한 결론이었다.

이날 저녁 우린 한 데 모여 만찬을 즐겼다. 요네다 씨는 서투른 영어 하느라 머리칼을 쥐어뜯어가면서도 IS-C의 매력을 전하느라 열심이었다. 그가 구불구불 그려낸 단어를 올올이 새겨듣지 않더라도, 그의 뜨거운 열정과 애정은 뭉근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렉서스 IS250C의 매력은, 그와의 만남을 계기로 한결 영롱하게 뇌리에 아로새겨졌다.




이번 시승회는 무대가 싱가포르여서 더욱 극적이었다. 적당한 속도의 흐름 속에서 IS250C의 성능은 뾰족이 두드러졌다. 바글바글한 바깥 풍경과 여유롭고 호화로운 인테리어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반전 가운데서도 최고는 값이었다. 무려 1억 원이 더 비싼 싱가포르에서의 값을 듣고 나니, 6천250만 원은 거의 ‘횡재’란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글 김기범 | 사진 토요타 아시아퍼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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