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투아렉
  • 김기범
  • 승인 2012.05.10 00:00


‘궁극의 SUV’를 꿈꿔 온 폭스바겐 투아렉이 2세대로 거듭났다. 새로운 테마로 성형하면서 외모엔 테스토스테론이 흥건히 괴었다. 면은 빳빳해지고 선은 뚜렷해졌다. 반대로 내면은 부드럽고 섬세하며 친절해졌다. 앞뒤 좌석 모두 포근한 쿠션을 머금었고 스위치 조작이 한결 쉬워졌다. TDI 엔진은 효율을 높였고, 자동변속기는 SUV 최초로 8단까지 쪼갰다.  





독일 베를린에서 69㎞ 떨어진 숲속에 냉전 때 구소련이 만든 그로스 될른 비행장이 자리한다. 표지판 따라 숲에 들어선 후에도 미로 같은 길을 한참 달려야 모습을 드러낸다. 폐건물과 녹슨 철망 때문에 분위기가 제법 으스스하다. 그러나 활주로만큼은 시끌벅적하고 활기차다. 그런데 폭격기 제트엔진의 굉음이 아닌, 자동차 타이어의 비명 때문이다. 


그로스 될른 비행장은 독일 통일 이후 유럽 최대의 드라이빙센터로 거듭났다. 자동차와 타이어 업체가 수시로 찾는 운전교육의 요람으로 명성 높다. 2011년 5월 11일, 그로스 될른 비행장을 찾았다. 한쪽에선 방탄차가 동원된 경호운전교육, 다른 한편에서는 독일군의 군용차 기동훈련이 한창이었다. 난 까마득한 활주로의 끝자락에서, 신형 투아렉과 만났다. 

투아렉은 폭스바겐의 간판 SUV다. 페이톤과 함께 폭스바겐 브랜드의 ‘고급화’ ‘하이테크화’를 이끈 상징적 존재이기도 하다. 사하라 사막의 유목민을 뜻하는 이름처럼, 투아렉은 마른땅, 진땅 가리지 않고 막강한 성능을 뽐낸다. 달리기 실력뿐 아니라 장비와 기술에서도 동급 최고를 꿈꾼다. 유럽 최대 자동차 업체인 폭스바겐의 자존심이 서린 ‘궁극의 SUV’다. 


세상엔 별의별 SUV가 다 있다. 그러나 편의상 한 장르로 묶었을 뿐, 저마다의 성격은 천차만별. 시선을 잡아끄는 외모나 폭력적인 가속, 자극적인 핸들링 또는 경이로운 험로주파성능 등 각자 날카롭게 벼린 비장의 무기를 품었다. 반면, 폭스바겐은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았다. 투아렉 한 대에 모든 것을 쓸어 담고자 했다. 이른바 ‘통합패키지’를 추구했다. 


가령 어디서든 기죽지 않을 덩치는 기본이다. 디자인도 세련돼서 화려한 도시와도 근사하게 어울린다. 뱃바닥이 껑충하지만 시속 200㎞를 심드렁하게 넘나들며 아우토반 1차선을 꿰찬다. 무게가 2톤을 넘지만 알프스의 꼬부랑길을 산뜻하게 헤집는다. 또한, W12 휘발유와 V10 디젤 엔진,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까지 얹는 등 각종 기술 도전의 밑바탕이 됐다. 





2010년 투아렉은 2세대로 거듭났다. 2002년 데뷔했으니 햇수로 8년 만의 진화였다. 안팎엔 폭스바겐의 최신 디자인 유전자가 녹아들었다. 그 결과 외모엔 남성 호르몬이 흥건히 괴었다. 면은 빳빳해졌고 선은 뚜렷해졌다. 골프 빼닮은 눈매와 그릴을 담아 표정이 한층 선명해졌다. 모난 눈망울 안쪽엔 LED를 사다리꼴로 심어 밤낮없이 형형한 광채를 뿜는다. 


옆구리는 이전과 비슷한 분위기다. 살짝 패인 보조개처럼, 은은하게 허리춤을 깎아냈다. 꽁무니는 간결하게 구성하되 입체적으로 빚었다. 테일램프는 반듯하게 다독였고, 테일게이트 끝자락은 오므리듯 범퍼 윗단으로 말아 넣었다. 한 쌍의 머플러는 범퍼 아랫자락에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모든 요소에 변주를 줬지만, 엠블럼을 가린들 누가 봐도 투아렉이다. 

차체 비율도 꼼꼼히 재구성했다. 길이와 너비를 21, 12㎜씩 키웠다. 휠베이스(앞뒤 바퀴 사이의 거리)도 38㎜ 늘렸다. 우람한 맷집만 탐낸 건 아니었다. ‘자세’도 정성껏 다듬었다. 17㎜ 낮춘 높이가 좋은 예다. 그 결과, 투아렉은 뼈대를 나눈 포르쉐 카이엔 빼곤 동급에서 가장 납작한 SUV로 거듭났다. 바퀴와 범퍼 사이의 간격 역시 빠듯하게 옥좨 멋을 살렸다.  


제원수치를 살펴보면 투아렉의 진화가 얼마나 역설적인지 깨닫게 된다. 이를테면 체격을 부풀리는 동시에 무게는 악착같이 뺐다. 모델에 따라 203~222㎏을 감량했다. 그러나 단단한 뼈대는 고스란히 유지했다. 같은 성능을 내되 한층 가벼운 소재만 골라 쓴 덕분이다. 근육량을 키우면서 체지방은 쥐어짜는, 피트니스센터의 ‘몸짱 만들기’와 비슷한 원리다.   


서스펜션은 1세대를 기본으로 개선했다. 앞뒤 더블위시본 방식에 에어스프링을 옵션으로 고를 수 있는 점까진 같다. 그러나 알루미늄 부품을 늘리고 디자인을 손질해 서스펜션에서만 47㎏의 무게를 덜어냈다. 에어서스펜션을 달 경우 지면과 차체 바닥 사이의 거리를 300㎜까지 띄울 수 있다. 그러면 최대 580㎜ 깊이의 물길을 침수걱정 없이 헤칠 수 있다. 


에어서스펜션은 차체 높이뿐 아니라 감쇠력도 조절한다. 노면 상태와 상관없이 차체를 일정한 높이로 유지시키는 ‘스카이 훅’ 기술이 핵심. 기본이 되는 ‘노멀’과 편안함을 극대화한 ‘컴포트’, 차체를 45㎜ 낮추고 관절을 단단히 굳히는 ‘스포츠’의 세 모드로 나눴다. 아울러 에어스프링을 기존의 개방형 대신 폐쇄형으로 바꿔 공기압축기의 무게와 크기를 줄였다. 


두껍고 묵직한 도어를 열면, 익숙한 듯 낯선 분위기의 대시보드가 펼쳐진다. 안쪽 뼈대의 굴곡과 형상은 과거와 겹친다. 하지만 표면의 소재와 디자인, 배치가 완전 새롭다. 1세대 투아렉의 인테리어는 다소 경직된 느낌이었다. 디자인엔 과장이 배었고, 소재엔 허영이 스몄다. 화려했지만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첨단’과 ‘최고’를 향한 강박과 집착이 낳은 결과였다. 


신형 투아렉은 어깨의 힘을 뺐다. 현란한 스위치로 오너의 넋을 빼놓겠단 욕심을 훌훌 털었다. 원목무늬를 남발해 명품가구 시늉내지 않더라도, 얼마든 고급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우드그레인은 제한적으로 썼다. 대신 플라스틱의 디자인과 표면을 고급스럽게 다듬었다. 도어트림엔 결이 고운 가죽을 씌웠다. 얄따란 금속패널로 포인트도 줬다.  



센터페시아엔 7인치짜리 터치스크린 모니터를 심었다. 화면이 여러 스위치의 기능을 흡수했다. 여백을 뭔가로 채워야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났다. 대신 공간을 대범하게 분할했다. 다행히 결벽증으로 변질되진 않았다. 꼭 필요한 스위치는 남겨 기능별로 묶었다. 변속레버 아래엔 주행모드(왼쪽)와 서스펜션 감쇠력(가운데), 차고조절(오른쪽) 스위치를 마련했다. 


이전 투아렉의 계기판은 크고 작은 테두리마다 크롬을 씌워 지나치게 현란했다. 반면 이번엔 한층 차분해졌다. 타코미터와 속도계, 그리고 정보창의 심플한 구성으로 바꿨다. ‘선택’과 ‘집중’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계기판의 시인성이 확연히 개선됐다. 온도조절시스템은 여전히 페이톤 부럽지 않다. 1세대 때처럼 각 좌석마다 원하는 온도로 맞출 수 있다. 


인간공학적인 면도 세심하게 배려했다. 앞좌석 사이의 변속기 터널을 보다 얇게 만들어 허벅지 공간을 넓혔다. 센터콘솔 뚜껑은 앞뒤 길이를 늘려 앞좌석을 바짝 당겨도 팔꿈치 짚는 데 무리가 없다. 센터콘솔 속엔 부드러운 안감을 씌우고 냉장기능까지 갖춘 안경 보관함을 마련했다. 땡볕 쬐는 여름, 뜨겁게 달아오른 안경테에 관자놀이 델 걱정을 접게 됐다. 


사운드시스템은 이오스를 통해 소개됐던 다인오디오와 함께 개발했다. 최대 12개의 스피커를 어울렸다. 18기가바이트의 하드디스크를 갖춰 CD와 DVD, SD 카드의 음악과 영상을 옮길 수 있다. 글러브박스엔 아이팟 연결단자를 숨겼다. 아울러 오디오엔 아이폰에 저장된 음악을 블루투스로 전송받아 재생할 수 있는 기능도 담았다. 화면엔 앨범 커버도 띄운다. 


시트는 새로 설계해 안락성을 키우고 공간도 챙겼다. 앞좌석 옆구리 받침엔 공기주머니를 곁들였다. 엉덩이 받침과 등받이엔 열선과 냉풍 기능을 담았다. 머리받침은 높낮이는 물론 앞뒤로 조절할 수 있다. 후방추돌 땐 앞쪽으로 전진해 목 부상을 줄인다. 뒷좌석은 쿠션을 넉넉히 넣어 한층 편안해졌다. 아울러 앞뒤 간격, 등받이 기울기, 6:4 분할도 자유롭다.  





신형 투아렉은 V6 3.0ℓ FSI(휘발유 직분사), V6 3.0ℓ TDI(터보 디젤 직분사) V8 4.2ℓ TDI, 하이브리드의 네 가지 파워트레인을 얹는다. V6 3.0ℓ FSI 엔진은 엔트리급이지만 280마력이나 낸다. 정차 때 시동을 끄는 스톱-스타트와 제동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저장하는 기능을 갖춰, 한 방울의 연료마저 알뜰살뜰 아낀다. 엔진 관리프로그램도 개선했다.  


V6 3.0ℓ TDI 엔진은 가장 많이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투아렉 심장의 실질적 기둥이다. 최고출력은 240마력으로 휘발유 V6을 밑돈다. 반면 최대토크는 56.1㎏·m로 성큼 앞선다. 최대 1,800바의 고압으로 연료를 잘게 으깨 효율이 뛰어나다. 2,000rpm부터 최대토크를 뿜기 때문에, 과장 섞어 가속페달에 발가락만 스쳐도 최대치의 추진력으로 차체를 튕겨낸다.  


V8 4.2ℓ TDI는 디젤 투아렉의 정상이다. 최고출력은 340마력으로 이전 V10 5.0ℓ TDI의 313마력을 웃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5%나 줄였다. 연비도 높였다. ‘다운사이징’의 묘미는 이런 데 있다. 친환경성을 강조한 V6 TDI와 달리 V8 TDI는 성능을 한껏 부각시켰다. 최대 2,000바의 고압으로, 1,750rpm부터 81.6㎏·m의 초강력 토크를 뿜어낸다. 


마지막은 투아렉 하이브리드다. V6 3.0ℓ TSI(수퍼차저 휘발유 직분사) 333마력 엔진과 46마력 전기모터를 어울렸다. 하이브리드 모듈은 직경 400㎜, 길이 145㎜에 무게는 55㎏에 불과하다. 앙상블의 결과는 놀랍다. 시스템 출력 380마력, 토크 59.1㎏·m의 파워로, 거구를 단 6.5초 만에 시속 100㎞까지 가속시킨다. 또한, 시속 50㎞까지 모터만으로 달릴 수 있다. 

한편, 투아렉은 말쑥한 외모와 달리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을 자랑한다. 한 지붕 식구로 거듭난 포르쉐의 이란성쌍둥이인 카이엔과 더불어, 짚이나 랜드로버의 실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유일한 SUV다. 신형 투아렉은 사용목적에 따라 AWD 버전을 고를 수 있다. 기본인 ‘4모션’과 하드코어를 지향한 ‘4×모션’의 두 가지로 나뉜다.  


‘4모션’은 앞뒤 구동력을 나눌 토센 센터디퍼렌셜과 각 바퀴마다 전자식 디퍼렌셜을 갖췄다. ‘4×모션’은 ‘터레인 테크’ 옵션에 포함된다. 앞뒤 구동력은 40:60이 기본. 로터리 스위치로 앞뒤와 뒷바퀴 좌우의 구동력을 고정시킬 수 있다. 로 기어도 마련했다. 주행안정장치(ESP)도 완전히 끌 수 있고, 차고도 시속 70㎞까지 오프로드 모드에 묶을 수 있다.  


신형 투아렉 시승은 한국 취재팀만을 위해 별도로 마련됐다. 볼프스부르크에서 다섯 대의 투아렉, 베를린에서 두 명의 강사가 그로스 될른으로 급파됐다. 차가 투아렉인 만큼 활주로 주행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이날 우리의 무대는 활주로 주변의 오프로드였다. 시승에 앞서 강사가 이실직고한다. 투아렉 성능이 워낙 뛰어나 코스가 퍽 심심할 수 있다고. 





시승차는 투아렉 V6 3.0 TDI. 에어서스펜션과 전천후 타이어로 기본무장을 마쳤다. 이 상태에서 투아렉의 접근각도는 30°, 이탈각도는 31°, 최대 등판각도는 45°에 달한다. 광활한 활주로를 벗어나 어스름한 숲속에 들어서는 순간 깨달았다. 강사의 고백이 선수의 엄살이었다는 걸. 코스는 멀끔한 비행장만 보고 지레짐작한 것보다 훨씬 험했다. 


길은 인정사정없이 패였고, 무자비하게 기울었다. 내비게이션 속 현재위치는 길 하나 없는 허허벌판. 다양한 위험이 도사린 바깥과 대조적으로, 실내는 고요하고 포근했다. 공조장치에서 바람을 쐐, 내뱉는 소리만 귓가를 간질였다. 시작에 앞서, 강사의 지시에 따라 차를 세운 뒤 기어를 중립에 놓고 로기어를 골랐다. 차고는 오프로드 모드로 껑충 띄웠다. 


이후엔 일사천리였다. 강사의 말엔 과장이 없었다. 투아렉은 숲길을 놀이터마냥 헤집었다. 깎아지를 듯한 급경사를 술렁술렁 올랐고, 까마득한 내리막을 스스로 제동 걸며 꿀렁꿀렁 내려갔다. 옆으로 잔뜩 기운 길도 두툼한 네 발로 의연하게 버티며 달렸다. 바퀴 하나만 땅에 붙어 있으면, 투아렉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전진했다. 모든 게 너무 쉬웠다.


다음날, 우린 투아렉 V6 3.0 TDI를 몰고 폭스바겐의 본사가 자리한 볼프스부르크로 달렸다. 반지르르한 아스팔트에서도 투아렉은 마냥 쉬웠다. 가속페달 밑에 응어리진 토크를 불사를 때마다, 모세의 기적처럼 아우토반 1차선이 뻥뻥 뚫렸다. 볼프스부르크에서 우린 기어이 투아렉 V8 4.2ℓ TDI을 끌고 나섰다. 기왕 맛 본 것,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투아렉 꼭짓점의 당위성은 명징했다. 시속 200㎞가 만만했던 V6 3.0 TDI를 확연히 웃돌았다. 가속이 한층 섬뜩했다. ‘제로백’이 5.8초로 V8 휘발유 엔진의 포르쉐 카이엔 S는 물론 미드십 스포츠카인 박스터보다 빠르다. 단거리 스퍼트만 민첩한 게 아니다. 시속 242㎞까지 폭풍 같은 가속을 이어간다. 함께 나선 V6 3.0 TDI만 애꿎게 뒤쳐져 고독을 씹었다. 


이처럼 초고속으로 달릴 때조차, 투아렉은 페이톤 못지않게 안정적이고, 파사트 뺨치게 정숙했다. 승차감은 부드러웠고, 시트는 앞뒤 차별 없이 포근했다. 악조건과 초고속을 변화무쌍하게 넘나든 수백㎞ 거리의 여정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투아렉은, 다시 한 번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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